사방팔방.. 그리고.. 사방팔방

강은 사방팔방 굽이굽이 흘러간다.. 
우리의 젊음도.. 
그렇게 흘러가길.. 

인천에는 볼거리가 많다. 몽유인천도.


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덧 차이나타운에 산 지도 햇수로 10년을 넘겼다. 난 정말 흔한 인천 사람이다. 부산에서 태어났고 중1이 되던 해에 이 곳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인천에는 인천 토박이가 많지 않다. 타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천에는 인천 사람같지 않은 인천 사람이 많고 나도 그 중에 한 명이다. 

출생지가 부산일지언정, 그래도 이제 인천은 내 고향이다. 처음 차이나타운에 이사왔을 때 이 동네 정말 무서웠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달려있지 않았고, 보도블럭은 늘 파헤쳐져 있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곳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차이나타운이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어엿한 관광지로 자리 매김하면서 정말 '관광지화'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 시간 속에서도 나는 동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인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늘 서울 사람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재수학원도 서울이었고 학교도 서울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지하철을 타고 늘 서울로 가기 바빴고 동네를 알 시간도, 노력도 부족했다. 인천은 서울에 비해 부족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늘 서울만 찾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 인천의 선거 문화를 주제로 한 레포트를 작성하게 되었다. 인천은 민주선거 이후 지속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보인 도시였는데 그 이유가 인천 사람들의 애향심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은 자신을 인천 사람이라 여기지 않고, 또한 많은 인구가 서울로 통근과 통학을 하며 자신을 서울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이유였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 때부터 비로소 동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난 이 동네를 잘 알고 있는걸까. 아니었다. 나도 서울순이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 때부터 내게는 우리 동네가 진정으로 내가 사는 동네가 되었던 것 같다. 

23번 버스를 타면서 동인천 전기상가를 지나던 중이었다. 우리 동네는 내가 이사온 10년 전과 변함없이 '똑같았다.' 그런데 똑같다는 건 단순히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발전적인 변화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똑같은 모습이었을 뿐이었던 거다. 그래서 동네는 그저 낡아가기만 했다. 낡아가고 늙어가고 비어갔다. 제물포고는 송도 이전을 하겠다고 했고 인일여고도 곧 그렇게 되겠다고 했다. 우리 동네는 비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동네를 내버려두어선 안되었다. 이 곳은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나는 그 가능성을 역설적이게도 '똑같음'에서 찾았다. 이 변함 없음 속에는 오랜 시간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고, 그건 오직 이 곳만이 가진 매력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오래되서 낡은 동네가 아니라 오래 되었기에 더욱 매력있는 동네. 고전미가 깃든 동네.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옛 역사가 깃든 많은 건물들을 보게 된다. 정말 많다. 차이나타운만 해도 그렇고 신포동을 걸어가는 길도, 동인천을 걸어도 전부 역사 투성이다. 그건 이 동네의 역사 때문이기도 한데, 1883년 강화도 조약 이후에 조선은 3개의 항구를 강제로 개항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의 항구가 바로 이 곳 인천이었고, 이 동네였다. 그래서 집 앞 아트플랫폼 앞을 가보면 ' 요 앞까지 물이 들어왔어요~' 하는 표시도 남아있다. 일본이 문을 항구를 강제로 개방하게 하였고 이 곳에 일본 사람들이, 청국 사람들이, 그리고 미국, 프랑스 등의 서구열강이 들어와 거주했다. 그래서 청국조계지, 일본 조계지, 각국 조계지 지역이었던 이 곳에 옛 건축물들이 매우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청국조계지가 지금의 차이나타운의 시초이고, 개항장거리가 일본 및 각국 조계지의 시초인 것이다. 이 모든 조계지는 그리고 치외법권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곳에 살던 조선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외국 열강들에 삶터를 뺏긴 조선인들은 동구지역으로 밀려났다. 내가 사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중구에 속하는데, 중구가 외국인 거주지였고 중구에 원래 거주하던 거주민들은 옆동네 동구로 쫓겨났던 것이다. 그래서 동구에도 역사의 흔적이 많이 산재하여있다. 창영초등학교, 영화학교, 옛 양조장 등이 그러하다. 중구가 외국인의 터였다면 동구는 조선인들의 삶터였다. 그리고 그 삶터는 서민들의 삶터로 이어져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달동네와 이를 배경으로 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송림 아뜨렛길이 동구와 배다리 지역에 있다. 



 서글픈 역사는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150여년 전 이 지역에서 조계지는 흥성했을지라도, 밀려난 삶의 언저리에 살던 사람들의 삶은 그렇지 못했듯,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수많은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곳들도 소중한데, 커져가는 차이나타운에 밀린 채 그저 낡아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했고, 이 모든 지역들이 하나로 연결된다면 동네가 하나의 연결된 관광지로서 새롭게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처럼 인천 역사길. 멋지잖아. 더욱이 단순한 큰 장소의 연결이 아니라 길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길이라는 단어는 정말 더 없이 잘어울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며칠간 머무를 것이 아니라면 이 곳이 걷기에 짧은 거리는 아니다. 그래서 난 이 곳에 자전거가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본다. 차로는 가깝고 걷기에는 머니까 그 중간정도의 역할을 하는 수단이 있다면 이 곳들을 잘 둘러볼 수 있을것 같아서 그렇다. 언덕이 있다는 한계와 아직 이 곳에 자전거 도로가 잘 조성되어있지 않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관광지로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잘 살리지 못해서 문제이지만 길 속에 담긴 컨텐츠 자체는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광지로서 가진 또 하나의 가능성이 나는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건 바로 지역의 활동가들 때문이다. 배다리와 신포동을 중심으로 많지는 않지만 동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이라면 동네가 관광지와 동네라는 두개의 영역으로 괴리되도록 놔두지 않고 동네가 관광지고 관광지가 동네인, 그런 곳을 만드는데 많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궁극적으로 동네가 관광지라는 방식으로 활성화 되길 바란 것도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제안을 어디에 해야할 지 감도 잡히지 않고, 어디서 시작해야할 지 막막하다. 그래서 그냥 블로그라는 공간에 써보기로 했다. 동네에 오는 사람들이 좀 더 이 곳을 잘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잘 보고 간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 동네가 더이상 늙어가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낡아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낡았기에 아름다운 것들로 인정받는 순간들이 오길 기다리며, 오늘의 주저리는 여기서 끝!

[사방팔방 : 민주, 문화를 끌어안다] 민주야 여행가자! 계획부터 선발까지#1-5.광주 : 국립 5.18 민주묘지, 망월동 묘역 사방팔방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도 흥미로운 포스팅을 준비해보았답니다^-^

"화려한 휴가"를 소개하면서 민주주의와 영화를 연관지어보았다면
 
오늘은 민주주의를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살펴보려고 해요.

바로 다음(daum) 웹툰 "26년" 이랍니다.

전 평소에 인터넷과 별로 친하지 않아 다들 읽는 웹툰도 읽지 않는데요

탐방 준비하면서 이 웹툰을 알게 되었고 딱딱한 역사를 어떻게 말랑말랑하게 풀어내었을지 궁금한 마음에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솔선수범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답니다.

한번 읽기시작하고는 완결까지 정주행했다는 ㅎㅎㅎ

26년

글/그림 강풀

이야기는 5.18 민주 항쟁 당시 계엄군으로 활동했던 어느 한 대기업의 사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양심이 이끄는 대로 살기에는 너무나 혹독했던 그 시대 계엄군으로 시민군을 쏘아죽인 그는,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가며 과거 그 사건에 대한 장본인에게 복수를 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하여 사격선수, 조각가, 건달, 경찰관, 국사교사 등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 참여한 부모를 잃은 젊은이들을 모읍니다.
자신이 계엄군이었다는 사실이 유공자들에게 밝혀짐으로써 갈등을 겪지만
결국은 계엄군이었던 사장 역시 피해자이며 과거를 크게 참회하고 있기에
이들은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시켜나갑니다.

(사진 및 내용 출처- 네이버 책 "26년")


가볍게 웃고 즐기자고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기에

만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지만

특히 시종일관 제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과거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정도로 기억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그 사건의 아픔이 뼛 속속들이 들어차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그 상처 속에서 고통받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5.18 사건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무심한 우리들이 얼마나 야속할지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계엄군의 발포로 생후 1년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말을 잊어버린 여자인물

예비군 훈련 소리만 들어도 계엄군인줄 아는 아프신 어머니가 휘두른 칼에 흉악한 인상을 가지게 되어 조폭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남자인물

당시 계엄군의 발포로 실제 죽어간 희생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 역시 온전히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또 눈길이 갔던 부분은 작품 속에서 복수를 꿈꾸며 모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계엄군으로서 시민군을 발포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민군의 입장에서만 아픔과 피해를 생각해왔지만

시대의 강압에 억눌려 어쩔 수 없이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을 적극 방조했던 계엄군 역시 피해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극 중 악역에 대한 분노가 한창 쌓여갈 때 쯤 악역은 죽임을 당한다거나 다른 보복을 당하지 않았는데,

독자로서 시원하게 한 번 복수를 당했으면 했지만 열린 결말로 끝을 맺어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웹툰을 그린 작가의 의도가 극 중 인물의 처벌에 있다기 보다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저 역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작품은 뒤로 하고 다시 518번 버스를 타고

26년의 배경이 되는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동해볼까요??

5·18민주항쟁 추모탑

도착입니다!

저 새알인지 모를 돌과 탑은 무엇이나구요?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착하면 딱! 하고 한 눈에 들어오는 추모탑이랍니다.

원형의 조형물은 "부활" 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민주열사들의 뜨거운 가슴과 열정의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따스히 다가오길 기원해봅니다.


국립 5.18 묘지에는 망월동 묘역(구 5.18 묘역)과 신묘역이 있습니다.

1997년 신묘역이 완성되면서 325구의 영령들이 신묘역으로 이장되었고

그 외 고 박종철 열사, 김남주 시인 등 민족열사가 구 묘역에 가묘 상태로 안치되어있습니다.

5·18구묘지

구 5.18 묘역 (망월동 묘역)

묘역

국립 5.18 민주묘지 (신묘지)

(사진 및 내용 출처 - 국립 5.18 묘지 홈페이지 http://518.mpva.go.kr/)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또는 국가적으로 행사가 있을 시에는

대통령이나 그 밖의 인물들이 참배를 하러 가는 곳은 신묘역이지만

구 망월동 묘역은 1980년 당시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뜻깊은 역사 공부의 현장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저희 사방팔방이 발도장을 찍고 민주 숨결을 느끼러 가는 곳이기도 한다는 점에서도요! ㅎㅎ

어느 망월동 묘역에 새겨진 말처럼,

그리고 웹툰에서 누군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실수로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고 앞으로 다음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인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포스팅은 여기에서 마치고 또 보아요^^^


아참, 만화인데도 불구하고

26년을 읽으면서 감회가 상당했는지 이번 포스팅은 제 개인생각이 많이 들어간 듯 하네요.

지나가는 소인의 생각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됩니당 ㅎㅎㅎ



[사방팔방 : 민주, 문화를 끌어안다] 민주야 여행가자! 계획부터 선발까지 #1-4-2. 서울 : 4.19 국립묘지-평화시장 - 명동성당-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방팔방

안녕하세요~^.^* 사방팔방 인천입니다! 

화창한 일요일이네요! 드디어 내일 저희의 본격적 여행이 시작되는군요. 떨립니다 *_*

저는 이제 서울지역 계획 포스트 마지막편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평화시장'편 까지 살펴보았는데요. 
이 번에는 '명동성당''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둘러보고자 합니다. 



1. 명동성당 


 여러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다들 한번 쯤 들어보셨겠지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 1987년 1월 경찰에 의해 불법 연행된 박종철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죽은 사건이다. 4·19혁명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현대 정치사의 한 획을 그으면서 20세기 후반 한국사회 변동의 복잡한 성격을 보여준 사건으로서 이른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경찰은 1월 15일 조사받던 박종철이 자기압박에 의해 충격사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박종철의 부검의였던 중앙대학교부속 용산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의 ‘고문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이 알려지자, 1월 19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의 사망원인이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라고 발표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조작경위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끈질긴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8과장 황적준의 일기 증언에 의해 드러났다.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자신의 부검소견서가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요청으로 ‘외상없음’으로 조작되었다는 황적준의 증언은 온 국민의 충격을 자아냈으며, 언론은 최초의 고문 가담자 2명에 대한 경찰간부들의 회유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결국 여론의 압력에 밀려 고문치사의 은폐·조작에 관련했던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사임하고,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비롯한 박처원 치안감, 유정방 경정 등 다수의 경찰간부가 구속됨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


사건으로, 제 5공화국 군부독재를 막내리게 한 기폭제였습니다.  (출처 :국가록원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jsessionid=FvnTQwwLrxX1Wrspf1GMk1bCNhjrxSPkGQWh2RJBjGvyLc6kDgTk!2009857978?id=001020&pageFlag=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명동성당에서 이루어진 당시 미사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 박종철 사망사건의 전말(中)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뿐만 아니라 당시 명동성당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성지였습니다.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요구하는 국민은 전두환 정권의 진압에 맞서 명동성당을 민주화 운동의 거점으로 삼아 농성을 벌였습니다. 당시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벌어진 6일간의 농성은 국민운동본부에서 항쟁종료를 선언하며 막을 내렸고, 결국 1987년의 6월은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실시로 막을 내렸습니다.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시민들

이렇듯 민주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명동성당'입니다. 역사에 대해 써볼까 하다가 역시 잘 정리된 6월 항쟁 기록들을 링크해두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듯 하여 밑에 링크해둘 테니,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1) 1987년 명동 일대. 출처 : 민주누리 http://www.kdemo.or.kr/nuri/post/2184
2) 박종철, 조성만의 길. 출처 : 민주로드 http://www.minjuroad.or.kr/map/spot/163
3) 1987년 6월 항쟁 명동성당 6일간의 기록. 출처 : 6월 항쟁 기념관 http://www.610.or.kr/ 


저희는 역사적 장소인 명동성당을 평화시장에서 명동까지 전철을 통해 이동하여 이 곳을 둘러 살펴볼 계획입니다. 




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http://www.kdemo.or.kr/site/

 드디어 마지막 장소입니다~* 
 시청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입니다. 
 이번 '민주야 여행가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수많은 민주주의 역사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업회는 시청역 근처에 있지만, 직접 찾아가기 어려우시다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화 운동 아카이브"를 꼭 들러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미국 워싱턴을 여행할 때였는데요. 워싱턴에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한 기록물들을 한데 모아놓은 거대한 '아카이브'가 있더군요. 그 때 그 곳을 보면서 선진국의 힘은 역사를 한데 모아 기록해두는 것에서 시작하는구나. 하고 느낀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하고 아쉬웠는데 
다행히 민주화 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아카이브를 구축해두고 계시는군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자료들이 모두 망라되어 찾기 쉽게 정리되어있으니 꼭 들러보세요~^^*


 저희가 작성한 지원서의 일부분인데요. 


우리는 20대의 또 다른 문화적 코드인 내일로 기찻길을 따라 굽이굽이 민주주의를 이어보려 한다. 기존 세대가 호남과 영남으로, 수도권과 지방으로,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갈등하고 대립한 것과 달리 우리는 20대의 ‘감성’과 ‘공감’의 방식으로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라도에서 서울로, 사방팔방 화합의 길을 이어보고 싶다. 마치 우리의 ‘사방팔방’이 대구에서, 광주에서, 김천에서, 인천에서 뜻을 한데 모아 이어졌듯이 말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역사는 사람들 속에서 생생하게 기억되어야만 그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다.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름 모를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룩되었고 쓰여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방팔방 굽이굽이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우리의 민주’로서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내일로, 민주로를 걸어가려 한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작품입니다. 반복되는 역사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넘어 화합하며 발전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꿈꾸며, 이제는 내일로, 민주로를 걸어갈 시간이네요 :-)  여행계획과 관련한 저의 포스팅 그래서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 

 더운 여름, 조금 걱정도 되지만 무사히 재미있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앞으로 여행담을 담은 이후 포스팅들도 기대해주시고 많이 찾아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방팔방 : 민주, 문화를 끌어안다]민주야 여행가자!계획부터 선발까지#1-5.광주: 구전남도청 및 금남로 일대, 화려한 휴가 촬영지 사방팔방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 내용은 저희 사방팔방팀은 물론 여러분 모두 익숙하실 거라 생각되는데요 :)

최근 흥행하고 있는 영화 "도둑들"이 개봉하기 전까지만 해도

685만명이라는 관객수를 기록하며 역대 한국 흥행 영화 순위에서 10위를 차지한

영화 "화려한 휴가" 입니다!
                                                                                                   
지금까지 소개된 책들 보시면서 민주주의 역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문화 요소는 책 밖에 없나

하고 지루해 하시지 말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들은 꼭 한번은 봐보시기를 추천해드립니당 ^-^   
 
화려한 휴가 

2007년 7월 25일 개봉

감독 : 김지훈

출연 : 김상경(강민우 역), 안성기(박흥수 역), 이요원(박신애 역) 외

줄거리 : 1980년 5월, 광주. 광주에 사는 택시기사 민우( 김상경 분).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끔찍이 아끼는 동생 진우(이준기 분)와 단둘이 사는 그는 오직 진우 하나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이요원 분)를 맘에 두고 사춘기 소년 같은 구애를 펼치는 그는 작은 일상조차 소중하다. 이렇게 소소한 삶을 즐기는 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로 무장한 시위대 진압군에게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눈 앞에서 억울하게 친구, 애인, 가족을 잃은 그들은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 분)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해 결말을 알 수 없는 열흘 간의 사투를 시작 하는데…
(출처 : 네이버 영화 "화려한 휴가")

고등학교 때 개봉했을 때 한번 보고

이번에 사방팔방 탐방을 준비하면서 또 봤지만

언제봐도 가슴이 찡하고 한쪽이 먹먹해지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최후 항전 전 영화가 정점을 향해 가는 때에

극중 주인공들이 새벽에 트럭을 타고 마을을 돌면서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라는 대사가 특히 뇌리에 남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노력해 갈 것인지

크게 반성해 보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영화 화려한 휴가를 잠깐이나마 접해보았으니

영화 속 장소를 실제로 둘러보아야겠지요?

바로 저희가 광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탐방하게 될 전남도청이 있는 금남로 일대와 화려한 휴가 촬영지랍니다!



(출처 - 공감코리아)

구 전남도청은 흔히들 금남로, 충장로 일대라고 하는 동구 광산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인상 깊이 남아있을 곳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최후 항전을 펼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현재 이곳은 구 전남도청이 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탈바꿈 중인데요

민주주의 역사를 지속하고 보존하려는 세력과 이보다는 개발에 더 큰 중점을 두는 세력사이의 몇 년여에 걸친 진통의 결과

5.18 민주항쟁의 중심부였던 본관건물만은 남겨두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한발한발 힘겹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과는 반비례로

순간순간 잊혀져가는 민주주의의 역사, 그 현장을

조금이라도 간직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출처 - http://iblution.tistory.com/142)

지금 보이는 건물 사진은 위에 있는 사진인데 뭐하러 또 올렸냐구요?

이곳은 화려한 휴가 촬영을 위해 광주 과학기술원 부근에 따로 마련된 촬영 셋트장이랍니다.

구 전남도청이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달리 영화 셋트장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

조오금 힘들 수도 있지만

사방팔방은 기꺼이 힘을 내어 가봅니다!





(사진출처 - 안동초 님의 블로그)

세트장은 구 전남도청을 비롯한 금남로 일대의 건물들을 80%로 축소해서 재현해 놓았는데요,

5.18 사건을 경험하신 이제는 중년의 어르신들께는

그 시대를 반추해 나가는 그런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이제는 광주사람이라고 해도 젊은세대들에게는

1980년 당시 뜨겁게 불타올랐던 숭고한 민주정신은 빛 바랜 채

근현대사 교과서 속에서 한번쯤 들어본 사건 정도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여행을 하며

보다 즐겁고 편안하게

민주주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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